◇ <추악한 중국인> 보양(柏楊) 저/김영수 역/창해 간(2005)
<추악한 중국인>, 보양(柏楊) 지음, 김영수 옮김, 창해(2005). 

개인마다 특징적인 성격과 취향이 다르듯 국가와 민족에게도 보편적 인성이 있을까? 한 사회의 성원들의 성정(性情)의 특징을 한두 마디로 규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관찰자의 주관에 따라 매우 피상적인 표현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떤 공통의 사회 문화적 환경에서 오랜 동안 더불어 살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배어든 사회 성원 간에 유사한 인성과 특징이 드러나는 것도 자연스런 현상이다. 우리가 보통 국민성, 민족성이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국민성과 민족의 기질은 오랫동안 축적된 그 사회의 구성원들의 문화 행태적 특징을 보여주는 과거의 산물일 수 있지만, 그 사회 성원들의 미래의 사고나 행동을 예측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문화비평적 차원에서 한 국가의 국민성을 진단해 보면, 그 사회의 문화적 기질을 파악하여 그 사회를 더 잘 이해하게 되고, 그들의 미래의 행동 방식까지 전망할 수 있게 해준다. 

사람들 누구나 다른 나라와 민족의 특징적 기질에 대해 나름대로 피상적 인식을 갖고 있지만, 다른 나라의 국민성, 민족성을 대놓고 이야기 하는 건 항상 조심스럽다. 자칫 민족 차별주의의 비난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자기 나라와 민족의 기질에 대해선 좋은 점만을 강조하고, 고질적인 나쁜 심성이나 폐단은 감추는 게 상례이다. 하지만 중국의 문화비평가 보양(柏楊)은 이런 금기를 단번에 깨부순다. 

보양은 중국 386세대를 이끈 정신적 스승으로 존경받는 지식인이다. 그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야기하기 거북한 중국의 민족성에 대해 신랄하게 자아비판했다. 그가 관찰한 중국의 민족성은 한마디로 ‘추악한 중국인’으로 규정된다. 이 책이 루쉰의 『아Q정전』 이후 가장 통렬한 중국인, 중국문화 비판으로 중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이유는 중국 사회의 저변에, 중국인의 심성과 행태의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는 치부를 직설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보양은 중국인들의 심성을 폐병 3기 환자와 같은 상태라고 진단한다. 썩을 대로 썩은 나쁜 병폐의 장독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고 힐난한다. 중국인이 감추고 싶은 상처를 아프게 찌르는 그의 독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이다. 그가 중국인들에게 자신의 추악한 모습을 똑바로 보라고 다그치는 저변에는 단순히 중국인의 품성을 모독하려는 독한 마음보다, 중국인이 나쁜 사고와 행동방식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가려져 있는 중국인의 총명함과 저력을 제대로 발휘하라는 애틋한 염원이 깔려있다. 

보양이 진단하는 중국인의 추악한 품성과 행태는 어떤 것일까? 중국인의 첫 번째 특징은 ‘더럽고 무질서하고 시끄럽다’는 것이다. 한국인이 경험적으로 수긍하는 대목이다. 또 단결정신이 강한 일본에 비해 자기들끼리 싸우는 ‘내분’이 많다는 점이 중국인의 두 번째 특징이다. 

중국인은 내면적인 단결의 중요성을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한 사람만 떼어놓고 보면 돼지 같은 일본인이 세 사람이 모이면 용이 되”는 데 반해, “한 사람의 중국인은 모두 훌륭한 용이지만 세 사람 이상이 모이면 돼지, 벌레가 된다"는 것이다. 서로 다투는 이런 나쁜 근성에 대해 일찍이 쑨원(孫文)도 중국인은 ‘쟁반에 흩어진 모래알’이라고 한탄한 적이 있다. 세 번째 특징은 유대인처럼 부지런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근면한 덕성마저 문화대혁명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고 한탄한다. 

체면을 중시하여 죽어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대표적인 중국인의 나쁜 근성이다. 사과할 줄 모르는 것은 중국인이 잘못을 인정하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중국인은 사과는 커녕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더 큰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고 더 많은 죄과를 발생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큰소리치기 좋아하고, 과장하여 허풍을 떠는데 익숙하며 동족에게 살벌하고 끔찍한 말을 퍼붓기 좋아하는 습성도 지적한다. “중국인은 쉽게 부풀어 오르는 민족이다.” 그릇이 작기 때문이다. 평등에 대한 관념도 희박하다. 저자가 더욱 통탄하는 것은 중국인들의 노예적 근성이다.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창의적이고 독립적인 사고를 두려워한다. 그러다보니 모든 일을 적당히 처리하고 시비를 가릴 줄 모른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여기서 보양은 중국문화의 뿌리 깊은 유교적 폐습의 영향을 지적한다. 후한시대(25~220년)에 “모든 지식인의 발언이나 변론, 문장은 스승의 가르침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사승(師承)’의 규정으로 인해 중국 지식인들의 상상력과 사고력이 말살되었다고 말한다. 이런 문화의 영향으로 공자 이후 2천년이 넘도록 한 사람의 사상가도 배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유교의 ‘사승’의 통제가 나쁜 중국문화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공자의 학설에 주를 달거나 그 제자들의 학설을 해석할 줄만 알았지 자기만의 독립된 의견을 내놓지 못했다. 깊이 고인 물에서 생존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던 이 문화가 바로 저자가 말하는 ‘장독문화’이다. 장독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가 중국인을 못나고 속 좁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보양은 중국인의 자질은 결코 나쁘지 않았지만 장독문화가 이런 자질을 소멸시켰고, 봉건전제의 우민(愚民)정책이 지식인의 사고력을 더욱 쇠퇴시켰다며 오천년 중국문화가 남긴 것은 전제와 공포정치, 내분과 노예근성뿐이라고 말한다. 특히 “중국 공산당 통치 기간이 중국인의 가장 열악한 품성이 유감없이 빛났던 시기”라고 비판한다. 나쁜 민족성의 형성에 유교의 통치이념에 의한 전제정치와 공산당의 전제정치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는 듯하다. 

보양은 중국에도 당연히 ‘민주(民主)‘가 있지만, ’너는 민(民), 나는 주(主)‘만 있다고 자조한다. ‘당은 국가 아래 있어야 하고, 인민과 정부는 권리와 의무의 관계여야 한다’는 명제를 현실에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공산당이 국가 위에서 군림하며 인민을 우민화 해왔음을 질타하는 것이다. 

죽은 물은 흐르지 못하는 데다 증발하기 때문에 오염의 농도는 더욱 짙어만 간다. 중국의 장독문화가 더욱 깊고 짙어진 것은 관료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봉건사회의 영향력이 오랫동안 발휘되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장이 독 바닥에 고인 상황이 중국인을 의심 많고 자기만 아는 존재로 변질시켰다. 나아가 중국인의 고루한 사상과 판단, 좁은 시야가 장독을 벗어나지 못했고, 중국인 대다수가 시시비비를 가릴 능력과 도덕적 용기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장독문화에 갇혀있던 중국인을 처음으로 일깨운 건 아편전쟁(1840~1842)이었다. 보양은 이 국치(國恥)야말로 중국의 장독문화에 가해진 강력한 충격이었다며, 그런 충격이 없었더라면 중국인은 장독 밑바닥에 깊이 박혀 질식사하고 말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나마 아편전쟁 이후 서양문명의 수용을 통해 민주, 자유, 인권, 법치의 새로운 관념을 접할 수 있었고, 새로운 물질문명을 가져다주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장독문화가 너무나 깊고 지독해서 자기 감정에만 빠져 새로운 문명을 소화하고 흡수하는 능력을 상실한 중국인들은 서구의 합리적인 문물과 정신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했다. 서양의 좋은 점을 본받자고 주장하면 ’서양을 숭배하고 외세에 꼬리친다‘는 ’숭양미외(崇洋尾外)‘로 몰아붙였다. 보양은 서양의 합리적 생활방식과 언행, 민주적 제도들을 배우려하지 않고 ’숭양미외‘의 언어폭력을 퍼붓는 중국인의 삐뚤어진 고질적인 근성을 한탄한다. 

저자는 여러 대목에서 유교의 전통이 만들어낸 부정적 민족성을 지적한다. 공자가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공자가 조상숭배와 정치를 결합하여 만들어낸, ‘과거에 의탁해서 제도를 개혁한다’는 ‘탁고개제(托古改制)’의 관념은 중국인 머리 위에 떨어진 최초의 재앙이라는 것이다. 조상숭배 자체는 영성이 충만한 행위지만, 무조건적인 숭상과 복종의 관념이 늘 중국인을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생각하게 만들어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이나 창조적 개척정신을 저해했다는 것이다. 

보양은 중국인의 미덕은 아주 많지만 안타깝게도 모조리 책 속에 있을 뿐이라고 조롱한다. 표방하는 이상을 정작 현실에 구현시키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중국인들의 자기 기만적 습성을 지적하는 것이다. 더구나 무엇이든 다 과거에 있었다는 생각이 알게 모르게 전수되어 5천년 역사를 들먹이며 천박하고 허풍만 떠는 교만한 민족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폐습과 민족성이 송나라 왕안석의 개혁이나 청나라 말기 100일 유신 등을 실패하게 만들었다며 애석해 한다. 

저자는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해온 봉건제의 유습이 만들어낸 나쁜 관념으로 두 가지를 꼽는다. 군주는 곧 아버지와 같다는 군부(君父)사상과 재상에서 보잘것없는 백성에 이르기까지 사소한 잘못이라도 하면 끌고 가서 곤장을 치고 갖은 고문을 가하는 정장(廷杖)이다. 정장과 군부사상의 결합이 중국인의 자존심을 거의 절멸시켰다는 것이다. 인권을 멸절시킨 잔인한 형벌은 현대의 중국 공산당에까지 전수되었지 않은가? 

중국문화를 형성하는 역사상 다른 나라에 없는 기이한 현상은 또 있다. 다름 아닌 ‘관장(官場)’이다. 즉 과거제도를 통해 만들어진 ‘관료사회’, ‘관료판’이다. 이들이 충성하는 대상은 국가나 통치지가 아니다. 오로지 자신에게 자리를 마련해준 사람에 대해서만 충성할 뿐이다. 왕조와 정부가 바뀌어도 관료사회는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국인은 자신에게 자리를 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되면 바로 굴복하여 달라붙는다. 민족의식이니 인간의 존엄성이니 하는 것은 전부 내팽개친다.” 

관료에게 나라의 멸망보다 자신의 자리 보존이 더 중요한 관심사였다. 만주족이 한족 사대부의 비굴하고 영악한 불치병을 간파하고 과거제도를 유지시켜 통치할 수 있었던 것도 관장의 문화를 적절히 활용했기 때문이다. 한족이 어떤 민족이든 포용했다고 자랑하지만 속사정을 살펴보면 중국문화의 기이한 관장문화와 소수 이민족 통치자들의 야합이 만들어낸 현상에 불과할 수 있다는 얘기다. 

보양은 60년대부터 중국 문화의 병리현상과 관료의 추악한 현상을 통렬하게 비판했고, 1968년 ‘인민과 정부의 감정을 도발’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소위 ‘집행되지 않는 사형’을 선고받기도 했었다. 1977년 출옥 이후에도 중국 전통문화의 병폐와 대만사회의 어두운 면에 대한 비판을 그치지 않았고, 1985년 『추악한 중국인』을 출간하여 중화권에서 엄청난 파장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곧바로 중국 공산당에 의해 금서(禁書)로 지정되었고, 2004년에야 해제되었다. 우리나라에서 2005년에 뒤늦게 출판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배경과 관련이 있다. 

보양이 지독한 독설을 쏟아낸 지 20여년이 지났다. 그가 적나라하게 해부한 중국인의 부끄러운 국민성의 다양한 맨얼굴은 중국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는 루쉰의 ‘오염된 항아리문화’를 계승하여 ‘장독문화’를 제기했다. 루쉰이 문학적 작품과 평론을 통해 비유적으로 중국인의 노예근성을 비판했지만, 보양은 전면적이고 단도직입적으로 중국의 전통문화에 내재된 열악한 근성을 거침없이 공격했다. 

보양이 중국인을 장독문화에 찌든 ‘추악한’ 민족이라고 지탄한 이유는 중국인의 나쁜 근성을 뿌리뽑아버리는 진정한 문화혁명을 희구한 때문이었다. 처절한 자기 성찰이 없으면 결코 새로운 중국문화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이 보양을 5.4운동 정신의 계승자로 재평가하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보양이 명쾌하게 지적한 중국인의 추한 근성이 이제 그들의 내면에서 완전하게 추방되었을까? 한때 일었던 중국 사회의 문화적 자성은 중국 전통문화의 병통을 얼마나 치유했을까? 

중국의 봉건왕조는 수천년 동안 전제적 문화와 전제적 정치체제를 바탕으로 존속되어 왔다. 그 와중에 보양이 설파한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장독문화를 만들어냈다. 아편전쟁이후 서구문명과의 조우를 통해 새로운 문화와 문물로 현대 중국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 과정에 중국의 전통문화가 긍정적으로 측면으로 변모하는 부분도 많겠지만, 중국인의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고질적 근성도 적지 않게 남아있을 듯싶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보양도 간간이 지적했듯이 중국 공산당의 전제적 ‘관장’ 지배 아래에서는 중국인이 타고난 총명함과 미덕을 발휘하기가 더욱 힘들 것이란 점이다. 

글/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