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쟁점을 파하다>


법륜 지음/한겨레출판·1만1500원


비정규직·재벌·양극화·통일 등


한국사회 화두 정면으로 응시


“생각차이 인정해야 갈등 해결…


어려울수록 기득권 내려놔야


나도 살고 너도 사는 나라 돼”


우리는 전쟁 중이다. 휴전선만이 아니다. 4대강에서도, 제주 해군기지 강정마을, 쌍용차 문제에서도. 이런 갈등 현장에 대해 일반 국민은 물론이고 지식인들조차 직시하기보다는 사팔뜨기 행세를 하는 동안 문제는 꼬여간다. 상처는 깊어지고 사람이 죽어간다. 그러나 ‘뜨거운 감자’에 손댔다간 멀쩡한 사람도 하루아침에 ‘수구꼴통’이나 ‘빨갱이’가 될 수 있다며 쉽사리 나서려 들지 않는다.


그런데 법륜(59) 스님이 우리 사회의 환부를 수술대 위에 올렸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미래구상’이란 부제를 단 <쟁점을 파하다>란 책에서다. <스님의 주례사>가 결혼을 앞둔 남녀의 궁금증에, <엄마수업>이 자녀 양육과 교육에 대한 엄마의 질문에 응답해 개인적인 고민을 해결해준 것이라면, 이 책은 ‘세상’에 대한 고민을 끌어내고 있다.


법륜 스님은 붓다가 중생들의 질문에 답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준 문답식 강연을 되살려 ‘즉문즉설’ 열풍을 불러온 주인공이다. 즉문즉설에서 어떤 질문에도 답을 회피하지 않은 그답게 이 책에선 갈등 현장뿐 아니라 비정규직, 재벌세습, 성장과 분배, 교육, 남북문제 등 첨예한 사회 현안을 정면에서 다뤘다.


지난 16일 인터뷰를 하러 그를 찾아간 곳은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 20층이었다. 그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평화재단이 유력한 세 대선 후보 진영의 외교·안보 전문가들을 부른 토론회장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바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그가 세 시간째 청중석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토론 뒤 마무리말을 했다. “40여년 전 한-일 국교정상화 때 반대가 많았다. 한국전쟁 때 북한을 도운 중국과 국교를 열 때도 반대가 심했다. 그러나 지나놓고 보면 아직까지 일본이나 중국과 국교도 열지 않았다면 어찌 됐겠는가. 남북문제도 그렇다. 북한에 악감정도 있고, 많은 문제도 있지만, 그렇다고 단절해 버린다면 우리 민족의 내일을 열 수 있을 것인가.”


그 순간 200여명의 청중석에선 토론 때의 찬반 논쟁을 넘어서는 남다른 파장이 흘렀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회피가 아니라 직면이 최선임을 충분히 감지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의 궁금증을 물어야 하는 건 기자의 숙명이다. ‘왜 스님이 세상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느냐’는 첫 질문에 그는 “왜 암탉이 설치느냐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응수했다. 개인적 고민이건, 세상사에 대한 문제건 사람들의 고통에 응답해 해소해 주는 게 종교인의 존재 이유라는 것이다.


그의 답변은 정토회를 창립한 이후 지난 20여년간 구호단체 제이티에스와 좋은벗들 등을 통해 인도·필리핀·북한의 고통받는 사람들을 쉬지 않고 도와온 활동이 뒷받침해 준다.


우선 쟁점에 대해 어떻게 깊이 있는 현안 파악이 가능했을지가 궁금해진다. ‘내 편, 네 편’ 이란 편견 없이 당사자들의 말을 허심탄회하게 경청하지 않고서는 얻기 어려운 이해력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욱 관심을 끄는 것은 문제를 푸는 접근 방식이다. 책 표지 바탕에 깔린 ‘화쟁’(和諍)이 바로 열쇠다. 화쟁은 삼국통일 뒤 신라에서 서로 부딪치게 된 쟁점들을 화해시키기 위해 고승 원효가 주장했던 것이다.


“서울로 가는 방향을 물을 때 인천 사람은 동쪽이라고 하고, 수원 사람은 북쪽이라고 한다. 표현이 다르다고,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자기가 선 위치와 관점에 따라 같은 사안도 다르게 볼 수 있다. 나와 다르다고 무조건 틀렸다고 비난할 게 아니라 그럴 수 있다고 보고 출발하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해도 차이점을 인정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생각으로 싸우는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 화쟁이 가능할까.


“그렇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달라진다. 후보들은 모두 국가를 발전시키고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한다. 이를 위해 내놓은 평화·통일·경제민주화·공정·복지 등의 공약에서 공통점이 많다. 공통점은 대통령이 되기 전에 입법화·제도화해야 한다. 그러면 세 후보 모두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세인들에겐 ‘결과’만 관심거리지만, 그는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짓느냐 짓지 않느냐보다 더 중요한 게 어떤 결정이든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처리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지난 추석 다음날에도 강정마을에서 찬성파와 반대파를 한데 모아 그가 잔치를 벌여준 것도 우리가 취해야 할 것은 승리가 아니라 ‘함께 사는 것’임을 깨우쳐주는 행보였다.


대선 정국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그의 시각도 남다르다. 한쪽에선 부자의 재산을 뺏거나 재벌을 해체하려 들고 재벌은 이에 극력 반발하는 대립 구도와는 다른 해법을 제시한다. “불황이 오면 약자들이 가장 고통을 받기 때문에 여유 있는 이들이 나서야 한다. 그러려면 대통령부터 솔선수범해 자기 권한과 기득권을 내려놓고 정치인도 세비를 깎으며 허리띠를 졸라매는 자세를 보여야 불황기의 한시적인 부자 증세도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불평등 구조가 심화되면 사회가 불안해지고 성장 동력도 떨어진다. 부자도 미움의 대상이 아니라 자랑스럽고 존경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부자들이 전체 이익을 위해 나설 때 나도 살고 너도 사는 나라가 된다.”


화쟁은 찬성과 반대의 중간이 아니다. 옳은 것을 지향한다. 그래서 스님은 누구나 알면서도 이해 당사자들의 옹호에 휘둘리는 쟁점에 대해선 날선 원칙론을 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북한 이탈 주민들을 꾸준히 도와온 그가 그들을 이민자로 대우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의외다. 그는 “이민자와 다른 특별대우가 남한 사회의 일원이 되는 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사회 적응에 장애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 노동력을 활용하는 방식도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노동시장에 혼란을 막도록 조율하지 않으면, 재벌은 적극적으로 통일을 원하고, 남한 노동자들은 목숨 걸고 통일에 반대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법륜 스님이 보는 이 시대 화두는 “안으로는 양극화 해소, 밖으로는 통일”이다. 누구라도 시대정신을 읽지 못하고선 역사에서 제대로 평가받을 수 없으리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스님은 사람들의 내적 고통을 덜어주고 세상의 희망을 열기 위해 지난 1년 내내 ‘즉문즉설’을 해왔다. 모두 300회의 이 ‘희망 만들기 콘서트’는 이제 4회만 남겨두고 있다.


그는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희망 만들기 콘서트’를 북한의 시·군·구에서도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계획을 바꿔 북한의 모든 시·군·구에 옥수수 100톤씩을 보내줄 작정이다. 북한 동포들에겐 즉문즉설보다 먹을 것이 더 절실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세상이 아프니 그가 아프다. 그래서 그는 늘 고통받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고통스런 사람과 현장을 회피하고 고통을 줄여줄 수는 없다. 쟁점을 회피하고 쟁점을 타파할 수도 없다. 그가 우리의 용기를 이끌어낸다. ‘쟁점 속에 뛰어들어야만 생채기 속에서 진주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글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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