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체구에 다소 무뚝뚝한 표정. 고집센 '투사'를 떠올리게 한 그의 첫인상은 함박웃음을 만나자 눈녹듯 사라졌다." 이사진속아이들 표정 정말 예쁘죠? 국제앰네스티 자료에서 보고 하도 예뻐 오려 붙였어요. 보고 있으면 절로 웃음이 나요." 고영권기자young@hk.co.kr

인권 감수성 또는 연대
 누구도 눈치보지 않는 밥상, 오지랖 넓게 살피는 마음
 약자 생존권 투쟁앞 쇼핑권 운운… 연대 빠진 인권이 오남용 된 탓
 인권을 인권답게 하는 것이 연대

첫 책 이후 헤맨 2 년여 시간
 들이대는 걸 연대로 착각해 와… 내 찌질한 과거 고백하니 풀려

팩스 신문 '인권하루소식'
 뉴스 없는 '평화의 날' 바랬지만 3000호까지 단 하루도 없었다

현실 탓만 하고 말건가
 쌍용차·강정마을 찾으면 뭐하나
 듣는 척, 보는 척 하는 것은 선의를 가장한 악… 더 무섭다



사회부 햇병아리 기자 시절 내근 당직 날이면 종일 팩스로 날아드는 성명서나 집회 안내문 등을 챙기느라 바빴다. 전날 나라 안팎에서 발생한 인권 관련 뉴스를 A4 2장에 빼곡히 담아 전하는 '인권하루소식'도 그 중 하나였다. 소위 문민정부 시대가 열렸다는데, 그렇게 많은 인권침해 사건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도, 그걸 끈질기게 추적해 하루도 빠짐없이 전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도 다 놀라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인권하루소식'을 내던 인권운동사랑방의 창립 멤버 류은숙(45)씨. 사람들은 그를 일러 '인권운동의 산 증인이자 역사'라고 한다. 그만큼 한국 인권운동의 역사가 짧기도 하지만, 21년간 인권지킴이 외길을 고집스레 걸어온 그에게는 결코 지나치지 않은 수사다. 

 거목의 밑동마냥 단단하게만 보이는 그가 "나의 찌질함에 대한 부끄러운 고백"을 담아 책을 썼다. <사람인 까닭에>(낮은산 발행)는 자유, 평등과 더불어 인권의 3대 요소로 불리지만 상대적으로 덜 조명 받았던 '연대(連帶)'의 가치를 역설한 책이다. 흔히 '투쟁'과 짝패를 이뤄 소비돼온 탓에 보통 사람들은 입에 담기도 버거웠던 '연대'란 말을, 그는 자신의 삶에서 부끄럽게 되새김질한 '기억과 감흥들의 잡동사니'에 녹여 "함께 살자!"거나 "곧 갈게. 기다려" 같은 쉽고 따뜻한 공감의 언어로 풀어냈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자리한 인권연구소 '창'을 찾았다. 그는 생계를 위해 주말부터 월요일 낮까지 일하는 식당에서 막 돌아온 참이라고 했다. 

-"도대체 인권이 뭐냐"는 질문이 가장 어렵다고 했는데, 그 답부터 들어보자. 

 마틴 루터 킹의 명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에 나오는 '형제의 식탁에서 마주 앉을 날'이란 표현에서 착안한 건데, 누구나 밥상에 둘러앉아 먹고 마시고 얘기할 수 있는 권리라고 할까. 이 밥상에선 누구도 '너 먹지마' '입 다물고 나가'라고 말할 권리가 없다. 나아가 더 허기진 사람, 성장의 영양분이 필요한 아이를 먼저 챙기는 것이 밥상의 미덕이다. 있는 놈, 목소리 큰 놈 눈치 보지 않고, 남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의 사람들이 눈치 보지 않게 밥상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인권감수성이다. 

-첫 책 <인권을 외치다>(2009)를 낸 뒤 어머니가 "야, 읽어보려고 해도 도무지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 푸념하셨다고 들었다. 그래서 연구를 많이 했나 보다. 

 인권이란 누구나 같이 얘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어머니가 읽을 수 없는 글을 썼다는 게 무척 속상했다. 이번 책도 "키스를 책으로 배웠어요"라는 시트콤 대사처럼 "연대를 책으로 배웠어요"라는 말이 나오겠다 싶어 걱정이 많았다.(웃음) 편집자는 사람 얘기로 풀어보라는데 그게 또 쉽지가 않더라. 엄청 헤매느라 책이 나오기까지 2년이 걸렸다. 

-연대라는 주제에 천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인권은 누구보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언어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한 부분이었던 민권을 넘어 인권이란 말이 우리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쓰이게 된 것도 90년대 들어 이주노동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면서부터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권리란 말이 오남용 되면서 사회적 약자의 생존권 투쟁마저 '권 대 권'의 싸움으로 몰아가는 상황이 벌어졌다. 2007년 뉴코아-홈에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규모 정리해고에 맞서 매장 점거농성을 할 때 사측과 입점 상인들은 "영업권 침해"를 주장했고, 쇼핑객들은 "쇼핑권을 보장하라"고 목청을 높였다. 참담했다. '내 거니까 내 마음대로' 식의 이기주의적 권리 의식을 넘어설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다 발견한 것이 자유, 평등과 함께 인권의 3요소로 꼽히는 연대였다. 인권 안에 답이 있었던 거다. 

-연대의 개념이 대충 이해는 되는데, 확 와 닿지는 않는다. 

 인권활동가라는 우리도 숱한 세미나와 초청 토론 등을 거치며 공부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인권 분야 활동가와 연대 투쟁의 경험이 있는 노동자 등 100명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조사도 했는데, 연대를 자기의 언어로 풀어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인권교육 현장에서도 연대를 언급하면, 농담이 아니라 90% 이상이 "신촌에 있는 대학이요?"라고 답한다.(웃음) 좀 안다는 사람도 "으?X으?X 할 때 쓰는 말이요?" 하는 정도다. 쉽게 말하면 연대란 인권이 인권답기 위해서 필요한 것, 나아가 타인과의 관계를 망각한 권리 타령이 정당한 인권 투쟁일 수 없음을 알려주는 경보기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쓰면서 많이 헤맸다고 했는데, 어디서 실마리를 찾았나. 

 '내가 아는 장애인은 다 죽었다'는 부제가 달린 챕터를 가장 먼저 썼다. 느리더라도 함께 가자는 구호와 노래를 입에 달고 살면서도 장애 탓에 느릴 수밖에 없는 속도를 견디지 못해 외면했던 일, 그분들의 부고를 받아 들고서야 내가 알게 모르게 주었을 상처를 되돌아본 일 등 찌질했던 내 모습을 털어놓고 나니 이야기가 술술 풀려나갔다. 그동안 내가 수동적인 상대에게 다가가는 나의 적극성을 연대의 실천으로 착각해왔다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다. 연민에서 비롯된 자선과 진정한 연대를 구별하는 것은 상호관심이다. 서로 상대의 관점에서 생각해볼 줄 알고 서로가 서로에게 다가갈 때 비로소 연대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연대의 세계에선 누구나 창조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고통에 마음을 기울이게 되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 이런 방법도 있었구나 하는 새로운 일들을 무궁무진하게 생각해낼 수 있다. 다들 재능은 다르지만 사람의 고통을 아는 능력은 누구나 갖고 있는 게 아닐까. 우리 안에 있는 이 거대한 힘을 다들 느꼈으면 좋겠다. 

-홍대 청소노동자들을 도운 일명 '날라리 외부세력', 사회 곳곳으로 번져나간 '희망버스' 물결 등을 보면, 최근 연대에 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높아진 것 같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2009년 77일간이 옥쇄파업을 할 때 내걸었던 구호가 "같이 살자!"였지 않나. '야, 저거 우리사회에 진짜 필요한 거다' 생각했는데, 요즘은 곳곳에서 이 말을 볼 수 있다. 지난달 제주 강정마을에서 첫 걸음을 뗀 '2012 생명평화대행진' 참가자들이 오산역에서 집회를 열 때였다. 전날 화재로 숨진 장애인 김주영씨의 분향소가 차려졌고, 강정이나 용산참사, 쌍용차 얘기 다 제치고 장애인 문제에 집중했다. 누구도 군말을 하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우리 이슈는 어디 갔냐는 말이 나왔을 거다. 그게 정말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글프다. 사람들이 연대라는 단어를 구호가 아니라 절박한 삶의 문제로 느끼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현실이 고통스럽다는 얘기니까. 

-연대의 필요성은 이해하나 사회 모든 영역의 운동을 포괄해 다루다 보니, 인권운동 고유의 영역이 모호해진 느낌도 든다. 인권은 전가의 보도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인권을 표현의 자유 같은 영역에 한정시키려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반대다. 인권은 신성시하면 할수록 생명력이 떨어져 이미 굳어진 권리만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게 된다. 인권은 오지랖이 넓어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분야에서 인권 매뉴얼을 정하라는 게 아니다. 어떤 판단이나 행동을 할 때 뇌에서 깜빡깜빡 불이 켜지며 위험 신호를 보내듯이, 인권의 원칙이 사회 모든 영역에서 자연스럽게 경종 역할을 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류씨는 열살 무렵 집안이 쫄딱 망하면서 지독한 가난을 겪었다. "학교 갔다 오면 물 길어와 항아리 채우고 언 손 녹여가며 빨래를 해야 했다." 보따리 장사로 겨우 생계를 이으면서도 교육열이 높았던 어머니 덕에 대학에 갔지만, 이내 혼란에 빠졌다. 시국집회를 접하며 기독교인의 보수적 가치관이 송두리째 흔들렸고, 부잣집 학생들을 보며 졸업해봐야 월급쟁이밖에 더하겠나 싶은 자괴감에 빠져 방황하다 그 해 겨울 부모 몰래 자퇴를 했다. "부모님한테 들통나기까지 6개월 동안 서울 구석구석을 걷고 또 걸었다"는 그는 "먼지 날리는 반지하 공장에서 종일 고개 처박고 미싱을 돌리는 여공의 모습 등 길거리에서 보고 들은 삶의 풍경이 뇌리에 박혔다"고 했다. 다시 대학생이 된 그는 학생운동에 뛰어들었고, 과 학생회장을 거쳐 총학생회 간부까지 지냈다. 

-92년이면 인권이란 말도 생소하던 시절인데 어쩌다 인권운동을 하게 됐나. 

 사무직 노동운동이 막 시작됐을 때인데, 취직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다. 운동단체에서 일하려니 석 달이 멀다 하고 적을 옮기다 결국 돈 벌겠다고 훌쩍 떠나는 선배들처럼 될까 두려웠다. 그 무렵 서준식씨 등이 인권운동모임을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이거라면 끝까지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인권운동사랑방이란 이름은 93년 2월 임시로 지은 게 그냥 굳어진 것이고, 초창기엔 사무실도 없어 제과점 중국집 같은 데서 모임을 했다.(웃음) 

-'인권하루소식'이란 팩스 신문을 내게 된 계기는. 

 민가협 출신으로 일본을 오가며 장기수들을 위한 기금 마련 행사를 기획하던 동료가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갔다. '인권활동가가 잡혀갔다'는 내용으로 존 F 케네디 인권센터를 비롯한 국제 인권기관과 국내 언론 등에 팩스를 보내고, 1주일간 아침 저녁으로 속보를 냈다. 대통령, 법무부장관 앞으로 항의서한이 날아오는 등 반향이 커 간첩 혐의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 걸 계기로 당시엔 최신 통신매체였던 팩스를 이용해 주 5회 소식지를 내기로 했다. 우리사회에 인권 문제가 얼마나 많은지 알리고 싶었다. 농담처럼 "그러다 뉴스가 떨어지면 '평화의 날'로 명명하고 안내면 되지"하고 시작했는데, 3,000호를 끝으로 2006년 인터넷 신문으로 전환하기까지 평화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매일 소식지를 내느라 고생 많았겠다. 

 말로 다 못한다. 한번은 사무실이 있던 건물에 불이 났다. 다들 옆 건물 옥상으로 건너 뛰어 대피했는데, 내가 겁이 많아 뛰지를 못해 동료들이 애를 먹었다.(웃음) 새벽에 내던 소식지를 오후에 보내면서 한 귀퉁이에 사유를 적었더니 전화통에 막 불이 났다. 

-2006년 인권연구소 '창'이 독립해 나왔는데, 운영은 어떻게 하나. 

 활동가들의 2년 순환근무 체제로는 연구의 연속성을 담보하기 어려워 독립했다. 월세는 30명 남짓한 후원 회원의 회비로, 나머지는 외부 강연료 등으로 충당한다. 연구소 일은 100% 무보수로 하고, 내 생계를 위해 1주일에 이틀 하고 반나절 식당에서 일한다. 

-인권 활동도 엄연한 노동인데 대가를 전혀 받지 않고, 생계를 위해 따로 일을 한다는 것은 지나치지 않나. 활동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장벽이 될 수도 있는데. 

 인권운동사랑방에서 토론을 거쳐 정한 원칙이다. 생존을 위해 수익사업을 벌이느라 본래 활동이 위축되는 걸 막자는 취지였다. 소수의 전업 활동가보다는 생업을 따로 갖고 1주일에 단 몇 시간이라도 힘을 보태는 활동가가 많아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사랑방에서도 생계비를 지급하고 있고, 이 원칙을 모두가 예외 없이 지켜야 한다고 고집하지는 않는다. 

-인권 활동가가 된 걸 후회해본 적은 없나. 

 수시로 한다.(웃음) 올 8월로 만 20년이 넘었는데, 1년에 한번씩은 꼭 그만두겠다고 짐을 쌌다. 동료들과의 불화가 주 원인이다. 한때 내 별명이 '도도류'였다. 도도하게 군다고 해서. 맺고 끊는 게 너무 강해 동료들과 자주 부딪치고 절연도 몇 번 했다. 사람관계 하나 제대로 못 푸는 내 인격에 대한 회의는 여전하지만, 빚 때문에 함부로 그만둘 수도 없다. 그간 책 보고 세미나 하고 해외 연수 하며 쌓은 경험과 지식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지 않나. 이 걸 어떤 형태로든 공유할 수 있게 만들어놓고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다. 

-2012년 대한민국 인권의 현주소를 짚어본다면. 

 송전탑, 골프장 막겠다고 산에 올라가 천막 치고 지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송전탑이며 고가다리에 올라 노동할 권리를 외치는 노동자들…. 어디를 봐도 아픈 사람들 투성이다. 말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대신 말을 해줘야 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들어야 하고, 경청했다면 함께 길을 찾는 것이 사람 사는 사회 아닌가. 이명박 정부 들어 표현의 자유 같은 기본적인 인권마저 짓밟힌 건 사실이지만, 이 모든 게 이 정부 탓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명박과 다를 것 없는 진보주의자, 선의를 가장 악이 더 무섭다고 생각한다. 

-주요 대선 후보들의 인권 정책 또는 인권감수성을 평가한다면. 

 박근혜 후보가 아예 듣지도 보지도 않고 깔아뭉갠다면, 문재인 안철수 후보는 정작 중요한 판단을 보류한 채 립서비스성 여운만 남긴다. 쌍용차 농성장이나 제주 강정마을을 찾으면 뭐 하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분명히 밝혀야 할 것 아닌가. 듣지 않으면서 듣는 척, 보지 않으면서 보는 척 하는 것은 선의를 가장한 악이다. 

-책에서 돈 문제가 핵심이 된 작금의 복지 논쟁에 대해서도 비판을 했는데. 

 요즘 얘기되는 보편적 복지란 게 보통 시민, 소위 중산층이 언제 추락할지 모르니 부자들 지갑에서 돈을 빼다가 하루 속히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자, 이거 아닌가. 나는 부자들 '돈 지갑'을 열게 하려면, 우리가 먼저 더 가난한 이웃에게 '마음 지갑'을 열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서구 복지 국가의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흉내 낼 수는 있지만, 그 바탕이 된 정치적, 정서적 공감과 연대 의식은 절대 빌려 쓸 수 없다.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이슈화하고 있는데. 

 애초에 학생인권조례는 곽노현 전 교육감의 작품이 아니다. 현장에서 뛰어온 청소년 인권 활동가들의 땀의 결실이었다. 곽 교육감이 구속된 뒤 인권조례가 다시 이념논쟁에 휩쓸리는 듯해 안타깝지만, 학생인권이 교육감 선거의 핫 이슈로 떠오른다면 임계점에 왔다는 의미에서 환영할 일이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여성의 참정권, 흑인의 시민권도 그런 과정을 거쳐 쟁취되지 않았나. 학생인권 역시 절대 물길을 되돌릴 수 없다. 

-우려스러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인권은 진보한다는 희망을 갖고 있는 건가. 

 일직선으로 죽 나가지는 못해도 갈짓자를 그리면서도 갈 거다. 세상이 더 나빠진다고 한탄하다가도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사람들을 보며 세상이 살 만하다고 느껴진다. 지금 싸우고 있는 사람들은 '제 것'만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 옆에 있는 사람, 뒤에 처진 사람들을 생각하기 때문에 물러서지 못하는 거다. 그들의 싸움에서 희망을 본다. 원래 책 제목을 '나 같은 걸 누가 기다려?'라고 하고 싶었다. 내가 연대의 가치를 새삼 깨닫기 전 꼭 그런 마음이었다. 그런데 아니다. 나 같은 사람이 와 주길, 와서 작은 손이라도 내밀어 주길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진짜 많다. '나라도 가 봐야지'하는 마음으로 신발을 챙기는 '연대의 전령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