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지하 씨가 26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김 시인은 이날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325개 시민단체 시국간담회에 참석, 초청 강연을 통해 "이제 여자가 세상 일 하는 시대가 되었다"며 "박근혜 후보가 이 민주사회에서 대통령되는 게 이상하냐"고 말했다.

 김 씨는 "조국의 위기가 나를 부르지 않았다면 나는 그 어떤 명망에도 그 어떤 명분에도 이 자리에 서지 않았을 것"이라며 "여자에게 현실적인 일을 맡기고 남자는 이제 첫 이마(초미·初眉)를 찾아야 할 때"라고 밝혔다. 

 또한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발표했던 풍자시 '오적'을 거론, "내 주제는 '촛불, 횃불, 숯불'이었다"며 "촛불에 나중에 끼어든 자들이 있다. 나중에 근 한 달 동안 거리에서 저희 존재를 증명한다고 우당탕탕하던 깡통 빨갱이들. 나중엔 봉하 쪽 부엉바위에서 꽝한 사람이 누구더라"라고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언급하기도 했다. 

 김 씨는 1971년 박정희 정권에서 '필화사건'으로 7년간 독방에 수감된 것과 관련, "나는 박정희 정치에 대해 다 넘어섰다"며 "이미 독방에서요. 뭐가 문제인가요"라고 반문했다. 

 이 자리엔 김 씨를 비롯해 대표적 보수인사인 이석연 전 법제처장, 이갑산 범시민사회단체연합 공동대표 등도 참석했다. 

 다음은 김 씨의 강연 전문.

 - 이 가문 날에 비구름 -

 내가 오늘 이런 자리에 선 것 자체가 기이합니다. 아시다시피 나는 본디 미학자이지만 직업은 시인이올시다. 그런 사람이 이렇게 시국에 관계된 초미한 대권선거에 관련된 연설회에 선 것 그 자체가 참으로 기이합니다.

 그러나 새벽녘 단 한마디로 그 기이함을 털어냈습니다. 조국이 나를 부른것입니다. 조국의 위기가 나를 부르지 않았다면 나는 그 어떤 명망에도 그 어떤 명분에도 그리 헐헐하게 이 자리에 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조국의 위기, 그리고 또 하나 나 자신의 커다란 내면의 대변동. 이것이 나를 오늘 이 자리에 서게 했습니다.

 내가 왜 오랜 서울생활을 접고 제2의 고향이라는 강원도 원주 변두리로 내려가게 되었을까요? 물론 장모님인 박경리 선생의 서거로 아내가 토지문화관의 그 어려움을 떠맡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실제로 토지문화관의 아내의 일을 돕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집안일을 한마디 말로 해도 괜찮다면 이렇습니다. 나의 아내는 장모님 말씀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고 장모님은 돌아가시기 전 유언으로 '김 시인은 문화관 일에 결코 접근시키지 말라' 하셨습니다. 현실은 그대로 되었고 그 말씀을 깊이 이해한 나는 원주와 원주 주변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아까 내가 내 내면의 커다란 대변동 운운한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 결과 나는 원주주변 문막과 부론의 '흥원창' 즉 충청도의 단강과 강원도의 섬강과 경기도의 남한강이 합류하는 지점의 우뚝한 산봉우리 '월봉'과 그 앞에 있는 옛 법천사 중장터의 경제원리 사이에 끼어든 월봉 산봉우리 위의 참으로 기이한 물흐름의 비밀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그것에서 1만4000년 전 파미르고원 마고성의 '신시'의 수수께끼인 '획기적 재분배'의 무서운 비결인 팔여사율(八呂四律)을 발견합니다.

 팔여사율은 중국 4500년 전 황제의 이른바 율려(律呂)가 아닙니다. 무엇일까요? 간단히 말해 여성성, 우연성, 생동성 여덟에 남성성, 질서성, 고정성 넷의 이른바 '카오스모스'적 결합입니다. 전 아시아의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경제와 시장원리인 '호혜, 교환, 획기적 재분배'의 법칙이 바로 팔여사율이라는 산상지 유수(山上之 有水:산 위에 물이 있음)의 이치인 것입니다.

 그로부터 나는 차차 고구려, 백제, 신라로부터는 머나먼 중조선 원주, 충주, 여주 인근에 왜 궁예, 왕건, 견훤 등의 군사적 대 혈전이 빈발하고 경순왕이 왜 칩거하며 장수왕, 광개토대왕의 무수한 고구려 탑과 천문대가 밀집해있는지, 그리고 또 어째서 천주교의 시작인 배론성지와 곤지암과 남한강, 북한강의 신·구교 성지들이 밀집해 있는지, 그리고 그리고 또 왜 오대산에는 세계와 우주의 핵이라는 명계(溟界)에 화엄고장이 들어섰는지 조금씩 알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왜 이곳, 이천의 '앵산'에서 스물여덟살의 여성동학당 '이수인'을 회주로 하는 화엄개백의 수왕회(水王會)가 나타나고 두물머리 앞산에 여운형의 중도노선이, 그리고 수많은 신·구 기독교 수행자들이 줄을 잇는지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든 것은 '원만'이란 옛 말로 집약되고 그 '원만'은 흥원창의 '월봉'에로 상징되었습니다.

 '월봉'은 여성의 상징입니다.

 '월봉'아래 영서지방 최초의 최대선창이었다는 '흥원창'에는 이런 전설이 있습니다. 
 고려 하반기 병명을 알 수 없는 이상한 질병이 퍼져 수많은 아기들이 삼밭에 삼대 쓰러지듯이 죽어갔다고 합니다. 그때 한 미혼의 처녀가 흰 해오라기 네 마리와 함께 흥원창에 나와 꿇어 엎드리고 꼭 나흘간 그 병을 거두어가 달라고 빌었다고 합니다. 나흘 만에 어린애들의 병은 사라지기 시작했고 처녀는 나흘 만에 죽어 하늘로 떠났다고 합니다.

 그 세 강 앞에 있는 부론의 길 이름이 있습니다. '앙암로(仰岩路)', '월봉을 모시는 길'이 그 길 이름입니다. 많습니다. 그 길을 통과한 사람들은 많습니다. 궁예, 왕건, 견훤, 경순왕, 마의태자와 고구려의 장수들입니다.

 또 있습니다. 그 옆 마을 '노림'은 이조 선조 때의 저 유명한 재상 '한백겸'의 고향입니다. 그는 중국의 신시체제인 '정권법'과 '팔상시'의 한국판인 '기전제' 연구자로서 그로부터 선조 때 저 이름난 중도경제기구인 '대동법'을 일으킨 명인입니다.

 그가 청년기에 반역자 '정여립'의 송장을 거두어준 것으로 관에 끌려가 호되게 곤장을 맞고 과거 열(列)에서 제거된 것은 유명합니다. 그러나 임진왜란 중에 일본에 부역할 자들을 잡아내 혼내줌으로써 그 뒤 과거에도 승진하고 정승까지 올라간 한국 주역 연구의 명인입니다.

 그 옆은 손곡입니다. 손곡은 선종으로 유명한 거돈사와 법상종의 법천사 사이에 그 가까운 골짜기에 길이 없습니다. 

 왜? 여자 때문입니다.

 왜? 공부 좀 하십시오.

 나는 '월봉'에서 나의 공부가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날 내게 이조 중후기의 지리서인 신경준의 '산경표'가 등장하고 그 속의 경상도 영주·봉화 사이 산간의 초미(初眉)라는 한 낭떠러지기 소식이 대구 매일신문 문화부의 노력과 함께 들어왔습니다.

 동해안에 해가 뜰 때 그 낭떠러지기 바위 속의 광석들이 여러 빛으로 반짝이고 그 때 바위사이에서 한 기운, 즉 핵산미립자가 나와 주변 소백·태백산간의 산기운의 최고 오염요소인 산을 정화시킨다는 것입니다. 바로 초미(初眉) 즉 첫이마 소식은 내게 잊혀지질 않았습니다.

 왜? 
 나는 7년 전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참가했다가 저 유명한 '몰트만' 목사와 그 측근 '안드레이스' 목사의 부탁으로 그들의 친구인 생태학자와 독일 녹생당 제 2인자인 미카엘 데이비스와 라인 강가에서 세 시간동안 담화를 나눕니다.

 그의 말입니다. '유럽생태학과 독일녹색당은 이제 끝났다. 사물 속에 이른바 마음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정신적 요소가 실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제 동아시아에서 생태학이 아닌 생명학으로 새로운 녹색당이 나와야 한다. 그때 우리는 그 영향으로 큰 자기비판을 통해 거듭 날 것이다.'

 이 말은 내게 하나의 채증같은 것입니다. 잊히질 않습니다.
 자연의 산의 오염을 자연의 핵산미립자 스스로 정화한다면, 그리고 인간은 환경이니 생태니 하며 마구 떠들 일이 아니라, 그 핵산미립자를 찾아 그 산을 치료할 수 있도록 열심히 조치를 할 수 있다면 인간의 일을 참으로 끝내는 것이 됩니다. 내 가슴에서 이 말은 잊히질 않습니다.

 나는 원주에 내려간 뒤 사람을 거의 안 만납니다. 깡통 빨갱이들이 지겨워서죠. 그래서 택시 값을 너무 많이 쓴다고 아내에게 혼난 적이 있는데도 그렇습니다.

 내가 공부하다 답답해 가는 곳 중엔 시인 원천석의 묘지인 '석경사'가 있습니다. 그의 1000여 수의 시중에 나는 딱 한편만 좋아하는데 
 -재세불생 유산간(在世不生 唯山間)-
 "이 세상은 살만한 곳이 아니다. 오직 산과 산 사이 어둑한 골짜기뿐이다."
 그럴까요? 이른바 볼란타입니다. 중국말로는 奉蘭西.
 간다하라에서는 이 컴컴한 귀퉁이를 부처님보다 더 편안한 자리라 부른답니다. 그럴까요?

 그런데 어느 날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 원천석 묘지가 있는 황골 뒤의 치악산이 곧 '입석대'란 곳입니다. 그 곳엔 차가 없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에 그곳이 곧 초미라는 망상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럴까요?

 나는 한 유능한 택시기사와 함께 그 황골의 입석대 뒤편 구룡사 뒷산인 비로봉 바로 뒷편으로 돌아돌아 들어갔습니다. 강림, 부곡, 솔거사리라는 곳입니다.

 나는 그곳에서 똥을 크게 싸고 왔습니다. 내 첫 이마 즉 초미(初眉)를 발견했기 때문이죠. 첫 이마자리에서 뜻있는 남자는 똥을 싸는 법입니다. 남자의 첫 이마. 동틀 때 자연이 자연을 치료하는 기운을 뿜어내는 기이한 자리. 그렇습니다.

 거기 솔거사리에서 방리철이라는 이상한 쇠성분이 해뜰 때 나온다고 합니다. 수려원도 있고, 태종대도 있습니다. 이방원이 자리이기도 합니다. 나는 그쯤은 별 관심없습니다. 그러나 원천석에게 벼슬을 하라고 이방원이 두 번을 찾아왔던 흔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의미가 있습니까?

 나는 강림을 내려와 바로 문막-부론의 흥원창, 바로 그 여성 상징처인 월봉으로 갔습니다. 무엇을 깨달았을까?

 남자는 남자가 할 일을 찾아내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 예수 제자들이 많을 것입니다. 좋습니다. 내가 예수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갇힌 동굴 앞 바위에 끝끝내 막달라 마리아가 앉아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산상수훈. 그리고 예루살렘 입성전야의 최고의 사랑이 섬김이라는 이야기.

 이제 여자가 세상 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4500만 중에 1000만이 일하는 여자들입니다. 작은 일 인가요?
 작은 일이라고 보면 큰일 납니다. 꼭 프랑스 혁명 전후에 '프리메이슨' 세계 조직사건을 모르는 사람의 태도지요.

 누가 알아요? 지금 그런 것 시작됐는지도 몰라요. 여자에게 현실적인 일을 맡기고 남자는 이제 첫이마를 찾아야 할 때입니다. 3000년 모권제 억압 이전의 신성공동체에서의 사관, 즉 여무 말입니다. 우리나라 경우엔 '단군'입니다. 그러나 남자가 도와야 합니다. 어떻게 '왕검'이 괜히 있나요? 문제는 어려분이 '첫이마'를 어떻게 규정하는가 문제일 뿐입니다.
 여러 말 이전에 잘라 말합니다.
 "나는 여성들의 현실통어 능력을 인정합니다. 안할 거예요?"

 깡통빨갱이들을 나는 비난했습니다. 왜?
 정부 돈 잘라 먹는 놈이 무슨 혁명을 해요? 나는 세상이 다 아는 오적의 욕쟁이 김지하입니다. 이름까지도 땅속에 던져 넣고 갔지요. 그런데 깡통빨갱이들이 돈을 떼먹고도 돈 떼먹었다고 욕하니까 날더러 반동분자래!
 반동이 그런 거예요? 그러면 온동은 뭐예요? 온동은 있어요?

 나는 4·19 때 민통조직에 안 들어갔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마르크스와 러시아 번역성 소설들을 다 읽었으면서도 안 들어갔습니다. 왜?

 내 아버지는 목포에서 유명한 빨갱이였어요. 또 6·25 뒤에는 영암 월출산에서 기관총을 쏘며 게릴라를 했어요. 해방직후 남노당이 월북할 때 저희들만 올라가고 모조리 제거해 버렸지요. 그것이 보도연맹입니다. 6·25 때 전쟁직전에 잡아다 둘씩 묶어서 바다에 집어넣었지요. 그게 20만이나 됐어요. 내 아버지는 일본 오사카에서 5년간 전기기술을 공부한 사람이니까 목포에서 귀한 사람이었지요.

 그때 LST던가 군함타기 직전에 살아나왔죠. 그런데도 6·25 직후 또 빨치산! 월출산에서 또 청산투쟁을 했어요. 다 죽인다니까 모조리 흰 옷 입고들 산을 올랐으니 총도 밥도 없었겠지. 그래서 내려 보냈지요. 산밑에는 경찰과 해병대의 기관총 뿐. 월출산 밑이 하습니다.

 아버지는 그 판에 그 '청산'에 반발해 투쟁하면서도 게릴라했어요. 그러다 동네사람들이 '영일(영일이 나올시다)'이를 목포 우익들이 산채로 돌을 달아서 가마니에 넣어가지고 삼학도 앞바다에 집어넣는 것을 봤다고 후라이를 쳤어요. 아버지는 청산과 외아들의 죽음. 이 두 가지에 기관총을 내던지고 하산했지요. 등산전문가라 샛길을 타고 내려와보니 내가 살아 있었습니다.

 잡혀 들어가 고초를 겪고 나와 세 번 자살시도, 실패하자 국군에 들어가(그때는 자수하면 국군에 재입대 시켰습니다) '육군군예대'에서 황해, 허장강 등과 함께 연예로 조명비치고 그랬죠. 종전이 되고 목포 못 오니까 폭격아래 허허벌판에 판자 집으로 지은 군인극장에 영사주임으로 있으면서 열세 살의 나를 불러올려 강원도 원주에서 살게 된 것이에요.

 가난했지요. 내가 조직에 들어가겠어요?
 그러나 외아들이 지 애비사상 모른 채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이론도 투쟁도 남보다 뛰어나지만 난 조직엔 안 들어간 거예요. 여러분은 우리나라 현대사, 근대사를 거의 몰라요. 우리 아버지는 그런 공산당이 아니었어요. 그럼 무엇인가요?

 남로당 아니면 사회주의, 공산주의 없다고? 바로 그것이 깡통빨갱이들의 시작입니다. 오모가리당, 뒷개패는 아세요? 영광출신 오성택 중심의 '오목당'이 무엇인지나 아세요?

 삼일운동이후 5년 뒤에야 남조선 공산당이 결성됩니다. 삼일운동 직후 1년 뒤인 1920년 9월 9일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지리산 천왕봉에서 있었던 다섯 사람의 첫 빨갱이 모임을 모르세요? 그러니 역사가 이 모양이고 정치가 이 모양이죠. 정말 몰라요?

 그때 주동자가 진주목사 신상식(별명 우범)이죠. 경상도 쪽 두 사람이 동학출신의 '형평사' 조직의 '김단야와 그 오른팔 박헌영'이고 전라도 쪽 두사람이 동학·불교쪽의 화엄개벽 '수왕회(여자가 대장인 조직)'의 '천이식과 인정인(남학과 정역사람'이죠. 이들은 공산이라 안하고 공생(共生)이라 했죠. 신상식은 오산사람으로 어려서 중국 출입때 좌익지식을 얻었다고 합니다.

 삼일운동직후 부산, 군산, 목포 등에 일본 배가 많이 출입했는데 그 때 부두파업이 아주 치열했습니다. 일본 기업가들이 '틀림없이 배후에 국제적 공산주의 조직이 있다'고 확신했답니다. 그러나 '물때(지겟꾼조직)' 따위와 같은 '화엄개벽파 수왕회'였고 이 자조·자립운동은 그 뒤로는 1970년 초 청도로부터 시작된 새마을운동을 고비로 사라집니다.

 '당신은 그걸 어찌 압니까?' 누군가 내게 물어요. 그러나 나는 대답을 안 합니다. 왜 해요?

 내가 앞에서 "조국이 나를 부른다"고 했죠?
 김일성이라는 임금(그 뒤 3대에 걸친 고대 깡통사회)이 주체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말을 한 것은 내가 아니라 유명한 종북주의자 김영환, 강철입니다. 시원하십니까? 알아요?

 해월 밑에 있던 앵산의 그 '이수인'이가 양평에서 강간당하다 찢겨 죽습니다. 그때 두물머리(양수리, 신구기독교 4대강 반대운동 상징터)에 숨어있던 해월 최시형 선생이 그 앞 강물에 뜬 하이얀 초승달을 바라보며 울며 부르짖었습니다.
 '이가 李다'
 '이'는 죽은 여자 이수인의 별명입니다. 그 천박한 아이가 곧 '李' 즉 전주 이씨 그러니까 임금이 된다는 뜻입니다. 왜?

 이수인은 정조 무렵 반정부 사건 관련으로 집안에서 쫓겨나 무주(茂朱)로 도망와서 '무주 이씨'로 성을 바꿉니다. 그래서 이수인은 스스로를 '이(蝨)'라고 낮춰 부른 것이고 해월선생은 '정역(正易)'의 김일부가 그 역(易)에서 말한 기위친정(己位親政) 즉 후천개벽이 되면 밑바닥(기위)이 임금 자리로 돌아온다(진청)는 뜻으로 '이가 李다'라고 울부짖었던 겁니다.

 왜 이상합니까? 
 박근혜 후보가 이 민주 사회에서 대통령 되는 게 이상해요?
 도리어 남자들이 이전 나처럼 산으로 가 첫이마, 초미(初眉) 노릇을 할 자기(불이 아닌 빛으로서의 태양 노릇)를 아야 할 때 아닌가요?

 나는 박정희 정치에 대해 다 넘어 섰습니다. 이미 독방에서요. 뭐가 문제인가요?

 더욱이 여러분의 우리나라 역사지식은 일본놈, 중국놈들과 그 기타 외국지식을 뒤집어 쓴 식민지 지식인들의 그것으로 가득찼습니다. 새 공부하는 뜻으로 여자 세상 한번 그려보세요. 

 달세상, 물세상, 그늘 세상입니다. 왜 종말 생각 안 합니까? 왜 개벽 생각 안 합니까? 동학이 우스워요? 이 '가문 날에 비구름' 이란 말이 우스워요?
 우스워요? 그럼 웃으세요.

 나는 몇 년 전 스웨덴의 스톡홀름에 간 적이 있습니다. 왜 갔을까요? 스톡홀름 대학의 한국학과 첫 외국문학 세미나였습니다. 그 스톡홀름에서 처음 번역한 외국 문학이 나의 시 '오적'이었답니다. 

 이상해요? 내 주제는 "촛불, 횃불, 숯불"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여러분처럼 제 나라를 식민지로 생각하는 깡통 빨갱이들이 데모를 했어요.

 -김지하 반동분자-
 -김지하 노벨상 받으러 공작하러 갔다-
 그래요? 맞아요?
 "촛불, 횃불, 숯불" 입니다 내 말 주제는.

 그런데 박근혜 후보의 정치투쟁 제 일선이라는 어떤 사람이 며칠 전 신문에 이런 글을 썼어요.
 "촛불을 확 쓸어버렸어야 했다." 맞아요?
 내 큰 아들도 촛불이지만 나는 그런 캄캄한 밤에 꼭 30분씩 가서 참관하고 돌아온 나 자신이 촛불이예요.
 나는 촛불 책을 5권이나 써냈어요. 나를 확 쓸어버릴래요? 그게 무슨 글인 줄 도 모르고?
 그 안에 여성 문제, 아이들 문제, 비정규직 문제 다 들어있다면?

 촛불에 나중에 끼어든 자들이 있지요. 횃불인가요? 그 패거리가 밥 음료수 막 퍼가지고 왔지요. 그것도 숯불인가요? 나중에 근 한 달 동안 거리에서 저희 존재 증명한다고 우당탕탕하던 깡통 빨갱이들.
 나중엔 봉하 쪽 부엉바위에서 꽝한 사람이 누구더라?
 그 사람한테는 새누리당 꼭대기들도 촛불을 켰죠! 그것이 모두 촛불 아니던가요?
 그것도 확 쓸어버릴 건가요?
 지금 선거할 건가요? 안 할 건가요? 마당에서 작대기로 땅빼먹기합니까?

 2012. 11.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