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철수’. 잠시 기억의 망각 저편 너머로 내팽개쳐진 줄로만 알았던 이 해묵고 지긋지긋한 과제를 꺼내 먼지를 툭툭 털고 있는 정치세력이 있다. 엊그제 민노당을 주축으로 첫 일보를 내디딘 통합진보당이 그들이다.

진보당은 강령으로 주한 미군의 철수와 한미동매의 해체를 내걸었다. 주한 미군 철수 노래는 반미 세력이나 시민단체 등에서 오랜 세월 틀어 놓아 익숙하다. 그렇지만 정당이 그 강령에 이를 명문화한 것은 어딘가 생경하다. 

이번 기회에 주한미군은 과연 필요한 것인지를 되짚어 보는 것도 의미는 있다. 한미동맹의 해체여부도 같은 테이블에 올려놓자. 논의는 여러 각도에서 전개가 가능하지만 역사를 나침반으로 삼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역사는 과거를 오늘의 눈으로 읽는다. 오랜 세월 악인, 폭군으로 비난받았던 인물이 선인이나 뛰어난 지도자로 재탄생하는 것도 역사의 속성에서 연유한다. 우리의 역사책을 한 번 펴보자. 식민 사관, 왕조 사관에서 탈피해 민족사관이 역사학계의 주류로 자리 잡은 70년대에 복권된 대표적 인물로 광해군을 들 수 있다. 

선조실록을 보면 광해군은 임진왜란 때 세자 신분으로 분조(分朝·조정을 둘로 나누어 위기에 대처하는 것)를 맡아 왜군을 물리치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뛰어난 군사지도자의 자질을 과시한다. 명-청 교체기 시절 왕으로 즉위한 그는 양측으로부터 군사적. 외교적 압력을 받는 샌드위치 신세가 되었다. 그는 표면적으로는 명의 요구에 응하는 체함으로써 임란 때 도와준 명에 대한 의리를 살리면서 군사강국인 청과도 대화 통로를 갖고 진의를 전달하는 등 실리 외교를 전개했다. 

광해왕의 대외정책은 임진왜란을 통해 경험한 전란의 참혹함을 백성에게 주지 않겠다는 통치자로서의 식견과 당시의 국제정세를 정확히 읽은 그의 냉철한 정세판단에 기인하고 있다. 

그의 주장이다. “명나라는 쇠퇴했고 후금은 한창 강성해지고 있는 나라다. 조선의 군대는 후금의 상대가 되지 않는 오합지졸이다. 후금과 원수가 된다면 장차 이 나라는 어찌 되겠소. 의리도 좋고 사대도 좋지만 나라를 장래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오.” 광해왕의 빼어난 국제 감각을 판독할 수 있다. 그의 치세 동안 국민은 모처럼 전란의 참담함을 피해 그런대로 평안한 삶을 누렸다. 

불행하게도 이 같은 실리외교 전략은 그를 지지했던 권신은 물론 조선왕조 500년간 실질적 권력의 토양이었고 흑백 이분법밖에 몰랐던 유생의 극심한 반발을 샀다. 그 자신의 정치적 과오도 있었지만 현실 외교 내지는 다원 외교는 그를 권좌에서 내몬 구실로도 작용했다. 

그의 뒤를 이은 인조의 향명(向明)대의(大義)정책은 이 땅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국민을 도탄의 구렁텅이로 빠뜨렸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우리가 단군 이래 모두 9백여 차례의 외침을 당했다고 기술했다. 이 모든 전란 중 가장 참혹한 전란이 병자호란이었다. 왕으로서는 청 태종에게 삼배구고두례를 올리는 삼전도의 굴욕으로 나라 전체를 망신시켰다. 아낙네들이 ‘화냥년(還鄕女)’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지명에 ‘홍제동, 홍제천’ 등의 슬픈 이름이 생긴 것도 이 때였다. 

한반도 5천년 역사에 민초의 고단함이 이보다 더한 시절은 없었다. 입만 살았던 우물 안 개구리 조선조의 비극적 운명이었다. 군이라는 호칭은 광해왕이 아니라 인조에게 씌우는 게 춘추의 필법이요 오늘에라도 바로 잡아야 할 숙제다. 

오늘의 현실은 광해왕 시절보다 훨씬 어렵다. 종이호랑이였을 때는 침묵했던 중국이 경제적 성장을 이룬 지금 그 본색을 드러냈다. 왕조시절 중국황제의 오만과 거들먹거림을 따라하며 주변국에 군림하려 한다. 서해안에서 발생한 해경살해 사건에 임하는 저들의 방자한 태도는 대한민국을 얼마나 깔보고 업신여기고 있음을 증언한다.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은 그들의 DNA속에서 맥박치고 있음을 잊어서 안 된다.

일본도 50보 100보다. 지난 봄 원전 폭발사고 때 우리가 보여준 이웃으로서의 인정과 형제애를 그들은 철저히 배신했다. 예를 들 것도 없이 일본의 편협함과 역사의식의 결여는 우리 등 뒤에 비수를 꼽고 남는다. 

미국이라고 우리의 대형일 수만은 없다. 다만 중-일의 사이에 미국은 우리가 하기 나름에 따라 비상구 내지는 탈출구가 될 수 있어서이다. 

외교에서 원교근공(遠交近攻)은 유사이래의 대원칙중의 하나에 변함이 없다. 미국은 우리의 전략적 사고에 따라 벗으로도, 중재자로도, 적으로도 될 수 있는 가변적 위치에 있다. 지난 60년간 미국은 우리와 애증으로 얽혀 있는 특수한 관계다. 과도 있었지만 공도 많았다. 정도 생겼다. 속된 말로 앞으로도 현재의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국익과 국민의 안전에도 유효하다. 

주한미군이 영원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민족끼리’를 입안의 사탕처럼 되뇌는 북이 우리에겐 동족이나 이웃이기 이전에 적으로 돌변하는 현실을 너무나 자주 목도했다. 연평도 민간인 포격 사건은 그 야욕의 한 자락을 들쳐 보인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따름이다. 주한미군이 북의 침략에 대한 인계선은 아니지만 여전히 북에게 전쟁억지력으로 작용하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한미동맹도 그렇다. 지금 전 세계에 어느 나라도 자국의 힘만으로 안보를 담보하지 않는다. 모두들 다수의 국가와 안보 동맹을 맺는 집단 안보체제를 운용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단선적 사고, 감정적 대응, 일방적 정책은 하지하(下之下)의 방략으로 절대 금물이다. 오늘 우리가 이룬 성장과 부, 평화와 번영 등은 해외 무역 의존도 90%가 낳은 산물이다. 다원적 외교, 실리적 사고, 국제적 감각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통합진보당은 진보를 간판으로 내걸었다. 진보가 보수가 같을 수는 없고 달라야 한다는 데는 이의가 없다. 문제는 ‘달라야 한다.’가 강박관념으로 머리를 짓누르고 그들의 진로를 방해하고 발목을 묶는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진보세력에 기대도 높아졌고 진보가 착근할 수 있는 토양도 비옥하다. 보수라는 이름으로 많은 악들이 자행되고 있다. 한강의 기적과 한국 부활을 이끈 견인차의 한 축이었던 재벌이 최근 국민에게 고통으로 다가오고 있다. 

자유와 경쟁의 수레바퀴 아래서 많은 서민이 신음하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내고 있다. 서민에 대한 복지 확대를 ‘포퓰리즘’이라고 매도하는 수구세력과 그들의 앞잡이가 위세를 떨치고 있다. 이들은 진보가 싸워서 무너뜨려야 할 주적이고 진보를 소리 내 부르며 구원을 요청하는 진원이기도 하다. 그 애절한 소리를 못 들은 체 하고 엉뚱한 데로 달려간단 말인가. 

국제현실을 외면한 진보의 종착역은 자멸임은 눈에 보인다. 국가 안보를 부인하는 무국적 진보는 국민에게서 버림받는다. 이 땅에서 진보가 부평초보다 못한 존재로 전락한 것도 오도된 국가관과 안보관에서 연유한다. 

반미는 그 독립 자존의 명분에도 불구하고 북의 앞잡이, 남한의 북한 홍위병으로 특정된다는 사실을 유의해야 한다. 현재 많은 친북, 종북 세력이 북의 조종으로 그들의 꼭두각시노릇을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진보당이 진보라는 이념의 굴레에 얽매여, 반미의 노예가 될 때, 그들은 인조시절의 병자호란보다 더한 불행과 대원군의 쇄국이 부른 구한말의 망국의 비극을 초청하는 역사의 죄인이 될 수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한 국가의 비극은 내정보다는 외교정책의 실패에서 온다는 것을 역사는 가르쳐 준다. 

통합진보당이 ‘말썽꾸러기’ ‘문제아’ ‘골칫거리’ 정당이 아니라 1%의 집권의욕이라도 있다면 고개를 돌려 대한민국 주변 정세를 쳐다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경제적 국경은 희미해진 반면, 민족주의의 기승으로 주변국 분쟁이 급증하는 등 군사적 국경은 더 강화되는 오늘이다. 외교적 단절을 외치고 고립무원을 자초하며 ‘만국의 노동자여 모여라’는 잠꼬대를 하는 시대착오적 강령은 폐기되기를 희망한다. 

소귀에 경 읽는 심정으로 이 글을 통합진보당의 출범에 부친다.

글/조병철 언론인·전 세계일보 주필